성당친구 여러분의 신앙 길동무, 양쌤 마리아입니다. 🐑 이번 주 복음 말씀은 우리에게 꽤나 묵직한 도전장을 던지는 것 같습니다. "살인하지 마라"는 계명을 넘어 "화도 내지 마라"니요. 우리가 평소 '이 정도면 착하게 살지'라고 생각했던 기준을 주님께서는 완전히 흔들어 놓으십니다. 오늘은 법이라는 껍데기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사랑의 알맹이'를 어떻게 채워야 할지, 우리 마음의 온도를 1도 더 높여보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1. 성경 본문 : 마태오복음 5장 17-37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과 달리,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17-3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려 왔다.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19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2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1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라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23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25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26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27 '간음해서는 안 된다.'라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8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29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거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30 또 네 오른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31 '자기 아내를 버리는 자는 그 여자에게 이혼장을 써 주어라.' 하신 말씀이 있다.
3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는 자는 누구나 그 여자가 간음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 버림받은 여자와 혼인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다. 33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네가 맹세한 대로 주님께 해 드려라.' 하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또 들었다. 3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하느님의 옥좌이기 때문이다.
35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그분의 발판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위대하신 임금님의 도성이기 때문이다. 36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네가 머리카락 하나라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37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 찬미합니다
2. [묵상] 율법의 완성, 그 '선'을 넘는 사랑에 대하여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아주 단호하십니다. "나는 율법을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 여기서 '완성'이라는 단어가 참 매력적입니다. 마치 밑그림만 그려져 있던 풍경화에 따스한 색채를 입히고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과 같죠. 당대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은 '선'을 지키는 데 목숨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 '행위의 선' 뒤에 숨은 '마음의 뿌리'를 보라고 하십니다. 살인이라는 열매가 맺히기 전에는 '분노'라는 뿌리가 있었고, 간음이라는 행위 전에는 '음욕'이라는 싹이 있었다는 것을 꿰뚫어 보신 것이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리사이의 의로움을 능가하라"는 말씀은 더 많은 규칙을 지키라는 뜻이 아닙니다.
규칙이 없어도 사랑하기 때문에 스스로 그 이상의 것을 실천하는 '자발적 의로움'을 의미합니다. 법이 무서워서 도둑질을 안 하는 것과, 상대방을 아끼기 때문에 그의 물건에 손대지 않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니까요. 특히 형제와 화해하고 나서 예물을 바치라는 말씀은 우리 신앙생활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해줍니다.
하느님께 드리는 제사보다 내 옆에 있는 형제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하느님을 더 기쁘게 해 드리는 '살아있는 예배'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완벽한 도덕가가 되라고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타일을 환대하고 존중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
3. 우리 삶에 깃드는 지혜와 묵상: '바보'라고 부르기 전에 멈추는 법
우리는 일상에서 얼마나 자주 마음으로 '살인'을 저지를까요? 운전하다 끼어드는 차를 향해 던지는 짧은 비난, 단톡방에서 누군가를 은근히 따돌리는 말 한마디, 가까운 가족에게 내뱉는 가시 돋친 "바보!"라는 소리. 예수님은 이런 사소해 보이는 감정들이 사실은 우리 영혼을 멍들게 하는 무서운 독소라고 경고하십니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분노는 '좌절된 욕구'의 표현입니다. 내가 대접받고 싶은데 그러지 못할 때, 내 계획이 틀어질 때 우리는 성을 냅니다. 이때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 보세요. "먼저 가서 화해하여라." 이 화해는 상대방의 잘못을 묵인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내 마음속에 도사린 '심판관의 의자'에서 내려오라는 초대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멍청이'라고 날인 찍는 순간, 나 역시 그 사람을 하느님의 자녀가 아닌 나의 판단 대상으로 전락시키기 때문입니다.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팁을 드릴게요.]
1) '5초의 멈춤': 화가 치밀어 오를 때, '예, 예' 혹은 '아니요, 아니요'라고 말하기 전에 딱 5초만 숨을 고르세요. 그 짧은 시간이 지옥의 불길로 가는 말을 막아주는 방화벽이 됩니다.
2) '내면의 제단 점검': 미사를 드리러 가기 전, 혹은 기도를 시작하기 전 내 마음의 제단에 누가 걸려 있는지 떠올려 보세요. 도저히 용서가 안 된다면, 그 마음을 그대로 주님께 봉헌하며 "주님, 제 힘으로는 안되니 당신이 도와주세요"라고 청하는 것부터가 화해의 시작입니다.
3) '담백한 진실': 맹세가 필요한 이유는 신뢰가 없기 때문입니다. 구구절절한 변명이나 화려한 수식어 대신,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하는 '정직의 근육'을 길러보세요. 단순한 삶이 우리를 더 자유롭게 만듭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는 '법을 지키는 사람'을 넘어 '사랑을 완성하는 사람'으로 살아보았으면 합니다. 내가 조금 손해 보더라도 먼저 미소 짓고, 내 입술에서 나가는 말이 누군가에게 비수가 되지 않도록 가다듬는 것. 그것이 바로 오늘 예수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능가하는 의로움'일 것입니다.
※ 출처표기
본문 말씀: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성경
참조: 가톨릭 굿뉴스 매일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