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존재 이유는 명확합니다. 어둠을 밝히는 것이죠. 아무리 작고 예쁜 촛불이라도 함지 속이나 침대 밑에 숨겨둔다면 그 존재 가치는 사라지고 맙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 신앙인의 정체성을 '등불'에 비유하십니다. 또한 우리가 세상에 내어주는 정성과 사랑의 '분량'만큼 하느님께서도 우리에게 채워 주신다는 '돼(measure)'의 원리를 말씀하시죠. 오늘 목요일, 내 안의 등불은 어디에 놓여 있는지, 그리고 나는 어떤 마음의 '돼'로 이웃을 대하고 있는지 조용히 성찰해 봅니다.

1. 등불과 되어서 비유: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 21-25)
<등불은 등경 위에 놓는다.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을 것이다.>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 21-25)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21 말씀하셨다.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등경 위에 놓지 않느냐? 22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 23 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24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25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오늘의 묵상: 드러나는 진리와 신령한 보상의 법칙
오늘 예수님의 가르침은 우리 삶의 태도를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영적 원리를 담고 있습니다.
1)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등경' 위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등불은 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비추기 위해 존재합니다. 우리가 받은 신앙의 기쁨과 주님의 말씀은 나 혼자 간직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삶의 현장에서 선한 행동과 따뜻한 말 한마디로 그 빛을 드러낼 때, 비로소 등불은 제 역할을 다하게 됩니다. 감추려 해도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이 진리라면, 우리는 당당하게 빛의 자녀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2) '되어서 주는 만큼 받는' 은총의 메커니즘입니다.
'돼(Measure)'는 곡식을 잴 때 쓰는 도구입니다. 내가 이웃에게 사랑과 자비를 넉넉한 대로 퍼주면, 하느님께서도 나에게 그만큼, 아니 그보다 더 보태어 갚아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이는 계산적인 거래가 아니라, 내 마음의 그릇을 넓히는 과정입니다. 인색한 마음으로 작은 되를 쓰는 사람은 하느님의 큰 은총을 담을 그릇이 없기에 결국 가진 것마저 잃게 됩니다.
3) '가진 자는 더 받는다'는 말씀의 역설입니다.
여기서 '가진 자'는 물질적 부자가 아니라 '말씀을 간직하고 실천하는 자'를 뜻합니다. 은총에 맛을 들인 사람은 더 큰 은총을 갈구하며 성장하지만, 말씀을 소홀히 하는 사람은 영적 감각이 무뎌져 결국 신앙의 본질마저 상실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더 많이 채우기 위해 더 많이 내어주는 역설적인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3. 우리의 삶에 깃드는 지혜와 묵상
1) 나를 위한 성찰 질문: 나의 빛을 가로막는 '함지'는 무엇인가요?
타인의 시선이 두려워서, 혹은 손해 보기 싫어서 내 신앙의 양심을 잠시 '침상 밑'에 숨겨두지는 않았나요? 오늘 내가 용기 있게 드러내야 할 빛의 모습은 무엇인지 돌아봅시다.
2) 오늘을 위한 신앙 지침: 오늘 하루, '돼'의 크기를 키워보세요.
오늘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기회가 생긴다면, 딱 요청받은 만큼만 하지 말고 조금 더 보태어 친절을 베풀어보세요. "되어서 주는 만큼 받을 것"이라는 주님의 약속이 내 삶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체험하는 귀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3) 일상을 바꾸는 지혜: '정직한 빛'으로 업무에 임하기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정직을 요구합니다. 오늘 업무를 처리할 때, 누가 보지 않더라도 가장 정직하고 투명한 방식으로 임해 보세요. 그 정직함이 바로 세상을 밝히는 가장 강력한 등불이 됩니다.
[출처 표기]
본문 말씀: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성경
참조: 가톨릭 굿뉴스 매일미사 강론 및 성경 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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